삶의 불편한 진실 : 우리는 다 아무 것도 아니다.
삶의 불편한 진실은 이거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수수의 사람에게만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중요할 뿐이며,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다.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이 진실을 애써 피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주의 작디 작은 푸른 점 하나를 배회하는 하찮은 먼지와 같다. 우리는 자신의 중요성을 상상해서 지어내고, 중요해지고자 노력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사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동기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무의미함을 피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우주는 우리 존재와 행동,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신경쓰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이 모든 걸 신경쓴다. 모든 일의 배후에 무언가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을 거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경 쓰는 이유는 하나다. 마음 속에 중요한 무언가가 들어 있어야만, 삶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과 존재의 무가치함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무언가 중요한 것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이 없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과 생각이 가치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이타주의나 다른 가치들을 추구한다.
희망,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
인간의 정신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하다. 삶이 어떻게든 나아질거라는 희망이 없다면 인생은 죽어 버린다. 행복의 반대말은 분노나 슬픔이 아니다. 어떤 일에 분노한다면 아직 중요하게 여기는 뭔가가 있다는 얘기다. 즉, 이들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행복의 반대말은 절망이다. 체념과 무관심의 종착역인 절망의 상태에서는 아무런 희망도 느낄 수 없다. 모든 게 엉망이라고 믿는 이들은 무엇도 해야할 이유가 없다. 절망은 차갑고 냉담한 허무주의이다. 아무 의미 없는 삶에서는 신경 쓸 일도, 의미 있는 일도 모두 사라진다. 절망은 불안과 우울, 정신병의 뿌리다. 그래서 인간은 절망을 없애고 희망을 품는 것을 인생의 최우선 과제로 삼게 된다. 희망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대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희망은 장대 끝에 달아놓은 심리적 당근이다. 우리는 미래에 성장하거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 이렇게 해서 우리 삶은 끝없이 중첩되어 놓여 있는 희망 이야기로 구성된다.
희망을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장한다.
여러 종류의 쾌락, 이를테면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희열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획득했다고 느낄 때 느끼는 우월감 같은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를 근본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이 감정들을 초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가치관을 따르다가 고통과 실패를 맛보는 것이다. 실패의 고통을 뼈저리게 경험한 뒤에야 우리는 그 생각을 초월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칸트는 우주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진정한 의미는 '의미를 형성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선택하고, 발전시킬 능력이 있다. 의식을 이용해 우주를 재구성할 수 있으며 원대한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흥정으로 얻을 수 없다. 즉, 조건부 협상 게임 안에서는 얻을 수 없다. 흥정으로 사랑이나 존경을 얻는 것은 심지어 추잡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존경받기 위해서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한다면, 그는 절대 나를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이상적인 인간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 나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인간을 절대 한낱 수단으로 취급하지 말고, 언제나 똑같이 그들 자체를 목적으로 대하라.'
이것이 인간성의 공식이다. 인간성 공식은 사람을 조건부 협상 관계에서 끌어내려 성인의 미덕으로 진입하게 해준다. 칸트의 인간성 공식에 따르면, 인간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 모든 잘못된 행동의 바탕이다.
고통은 삶의 보편 상수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는 불변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오락가락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날은 행복했고 어떤 날은 불쾌한 일이 일어났다고 여긴다. 이 관점에서 우리는 상수이고 세상은 변수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틀렸다. 사실은 정 반대다. 고통이 삶의 보편 상수다. 인간의 의식과 기대는 우리가 설정한 고통의 양에 맞춰서 세상과 자신의 경험을 왜곡한다. 그래서 설문조사를 하면 사람들의 행복도는 늘 10점 만점에 7점이 나온다. 날씨가 아무리 화창해져도 언제나 인간의 마음은 약간 실망스러운 구름의 존재를 찾아낼 것이다. 이런 고통의 불변성은 '쾌락의 쳇바퀴'를 낳는다. 늘 상상 속의 10점을 찾아서 달리고 또 달린다.
고통을 없앨 수 없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모든 해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시도는 역효과을 낳을 뿐이다. 고통을 제거하려고 노력할수록, 고통이 사라지기는 커녕 고통에 대한 민감성만 높아진다.
그래서 '행복 추구'는 오랫동안 우리 문화가 사람들에게 심어온 해로운 가치다. 자멸적인 동시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잘 산다는 건 고통을 피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이유로 고통받는 걸 의미한다.
고통 속에서 더 강해지는 '안티프레질(antifragile) '
일반적으로 현상이나 사물은 외력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약해지거나 손상되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 더 강해지는 것도 있다. 이를 안티프레질(antifragile)이라 한다. 현상과 사물은 3개로 구분할 수 있다. 꽃병 같은 물건은 프레질fragile하다. 작은 충격에도 산산조각나고 되돌릴 수 없다. 프레질한 시스템은 연약한 꽃이나 10대 소녀 같아서 항상 보호받아야 한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폭발한다면? 그 사람과 나는 프레질한 관계다. 반면 드럼통 같은 사물은 튼튼하다. 아무리 던져도 끄떡없다. 우리 사회는 프레질 시스템을 드럼통 같이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튼튼한 시스템은 변화와 충격에 잘 견딘다.
세 번째, 안티프레질 시스템은 스트레스와 위협 요인을 견디는 것을 넘어서서, 고통으로부터 오히려 이익을 얻는다. 스타트업이 전형적인 안티프레질이다. 이들은 사업 초기에 빨리 실패하고 그 실패로부터 뭔가 배울 방법을 찾는다. 그 결과 더 강해진다. 인간의 몸은 내가 어느 쪽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시스템의 성격이 달라진다. 적극적으로 고통을 추구할수록 근육이 생기고 골밀도가 높아지며 혈액순환이 잘되고 강한 몸이 된다. 반대로 스트레스와 고통을 피해 가만히 있는다면, 근육이 위축되고 체력 또한 약해진다.
인간의 마음도 몸과 똑같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프레질할 수도 있고 안티프레질할 수도 있다. 혼란이나 무질서를 만나면 마음은 이 상황을 이해해 원리를 파악하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자 한다. 이를 학습이라고 한다. 학습은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주고 실패와 무질서로부터 이익을 얻게 해 준다. 반면 고통을 피해 스트레스와 비극과 무질서를 피하면, 우리는 프레질해 진다. 일상적인 좌절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줄고, 쉽게 다룰 수 있는 세상의 작은 부분에만 관여하면서 삶이 오그라든다.
이는 고통이 삶의 보편 상수이기 때문이다.
삶이 아무리 '좋아'지건 '나빠'지건 간에 고통은 언제나 존재한다. 고통을 겪다 보면 결국 감당할 수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은 이것이다.
'고통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피할 것인가?'
'프레질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안티 플레질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내 몫이고, 우리 모두는 의미와 중요성을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도서 리뷰 :
희망 버리기 기술 (마크 맨슨 / 갤리온)
# 도서 리뷰 및 번역(영미도서) 문의 : haileyn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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