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
과식의 심리학 (키마 카길 / 루아크)
『과식의 심리학』은 미국 사회에서 진행된 연구와 상담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한국과 미국의 사회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기에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한국 사회는 미국에 비해 외모나 체형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비만을 자기 관리를 못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로 치부하는데도, 비만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식의 심리학은 이런 모순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에 따르면 건강과 관련된 모든 행동은 행동성 중독behavioral addiction 관점에서 공통점을 보이며, 중독의 틀 안에서 포괄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과식 습관은 중독 행동이다.
습관적으로 과식을 하다가 살이 찌고나서, 다시 살을 빼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은 모든 사람이 대체로 비슷하다. 먼저, 살을 빼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음식과 물건들을 사기 시작한다. 에너지바, 요구르트, 시리얼, 다이어트 식품을 주문하고 피트니스 회원권, 운동화, 운동복, 운동 기구를 사들인다. 살을 빼는 일은 기본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것임에도 우리는 몸무게를 줄이기로 결심하고 나서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구매하는 데 돈을 쓴다. 이는 우리가 '소비'로 문제, 즉 비만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음료나 보조제, 식품을 먹으면 살이 빠진다고 느낀다. 제조사들이 화려한 문구로 다이어트 효과를 홍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 가공식품은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다. 건강 식품으로 위장했지만 실은 정크 푸드다. 보통 다이어트 식품을 먹다보면 오히려 먹는 양이 늘어난다. 대개 몇 주는 계획대로 잘 실천한다. 그러다 알코올중독자가 겪는 것처럼 '미끄러진다'. 즉, 다시 과식을 시작한다. 일단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긴다. 하필 냉장고에는 먹을 게 없다. 고칼로리 배달 음식을 시켜서 잔뜩 먹는다. 그리고 후회한다. 과식을 '무효화'하기 위해 샐러드나 건강 주스를 찾아서 마신다. 이 시나리오는 누구에게나 반복된다.
많은 연구에서 과식이 알코올의존이나 마약중독과 유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달고 기름지고 짠 음식은 뇌의 도파민 보상체계를 활성화한다. 도파민 보상체계는 마약중독이나 알코올의존을 일으키는 부위다. 가공 식품에 과도하게 들어가 있는 정제당 및 탄수화물은 포만감을 주지 않으면서 지방으로 저장되기 쉽고 식욕도 자극한다. 당과 탄수화물이 몸과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섭취 칼로리만 계산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다. 체중 감소와 체형 관리는 먹은 칼로리의 양뿐만 아니라 질과도 관련이 깊다.
시장에 넘쳐나는 가공 식품과 다이어트 관련 제품들은 모두 소비 문화의 산물이다. 따라서 과식과 섭식 중독, 비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과식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해야 한다.
과식과 '더 많이'를 부추기는 소비 문화
자라Zara와 H&M, 이케아 등은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수명이 길지 않은 제품들을 싼 값에 다양하게 공급한다. 세계 경제는 소비에 기초해 돌아가고 우리는 여러 제품을 무분별하게 사들인다. 물건을 사는 이유가 개인의 욕망에서 비롯될 때도 물론 있지만, 사람들의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소비주의'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콜린 캠벨이 말한 ‘상상적쾌락주의imaginative hedonism’에 따르면, 소비자는 미디어와 광고가 보여주는 제품의 이미지와 이야기에 현혹되어 백일몽 같은 환상을 가지게 된다. 언박싱un-boxing 영상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현상은 상상적쾌락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렇게 물건을 구매하더라도 실제로는 상상했던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다른 물건을 또 사모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소비한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은 정서적 빈곤으로 이어진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소비주의 문화에서 가난하게 사는 일은 지난 시대의 가난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예전의 빈곤은 배고픔이나 질병, 주거지 결핍의 문제였고 이는 생존과 관련되어 있었다. 현재의 빈곤은 '상대적 빈곤'으로, 소비문화가 규정하는 행복한 삶에서 사회적, 심리적으로 소외된 상태이다. 소비 사회에서 '행복한 삶'이란, 많은 기회를 붙잡고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 삶이고 남들이 욕망하는 기회를 되도록 남보다 먼저 붙드는 삶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소비에 집중하는 경제는 사람들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환경을 만들고 소득 불평등도 심화시켜서 결국 심리적 고통을 훨씬 증대시킨다. 부유한 나라에서 빈곤하게 사는 것은 '눈 앞에 펼쳐진 쾌락적 감각과 화려한 경험의 기회에서 배제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화려한 경험이란 대부분 패스트푸드, 쿠키, 화려한 디저트와 요리들을 의미한다. 정크푸드는 화려한 소비 문화를 값싸게 경험할 수 있는 수단이다. 즉 가난한 사람들이 트렌드를 경험하고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통로다. 이런 특징을 이용해 식품 산업은 정크푸드를 소비하면 행복한 삶에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할부와 대출 상품을 광고하면서, 지금 즉시 고가의 자동차와 비싼 집을 사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광고하는 것과 같다.
소비의 대가에 무감각해져서 소비한다.
'무언가를 사기 위해 미리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거나, 무언가를 살 때 앞으로 어떻게 그 비용을 충당할지 정확하게 알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가 소비 문화 도처에 깔려 있다. 대출 산업이 부추기는 이런 메시지는 식품 산업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가공 식품 라벨에는 '무첨가 free' 문구가 굉장히 많다. '무설탕'이나 '무지방' 문구는 식품의 칼로리가 낮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대출로 물건을 소비하는 문화는 '책임성의 붕괴'를 일으킨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도 상환 능력을 넘어선 대출과 주택 구입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다. 현재 미국 국민이 겪고 있는 각종 건강 문제도 영양섭취와 식품 선택에서 책임성이 결여되어 생긴 것이다. 경제적으로 상환 능력을 갖추고 신체 건강도 유지하려면 개인 모두가 재무뿐만 아니라 칼로리와 영양소도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
식품 산업의 속임수 - 맛, 다양성, 편리함
식품 산업은 대중을 유혹하는 심리 기술을 활용해 효과적인 브랜딩 전략과 판매 포인트를 고안해낸다. 식품 산업이 소비자의 구매를 이끌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대표적인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1) 기호성
음식이나 액체가 제공하는 괘락적 보상이나 즐거움을 일컫는 용어다. 음식을 고를 때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변수다. 최근에는 기호성을 넘어서 '초기호성'이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보통 매우 달고 지방 함량이 높으며 짠 음식이 '초기호성' 식품에 해당한다. 인간은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더 많이 먹으려고 한다.
초기호성과 관련된 용어로 ‘지복점bliss point’이라는 개념이 있다. 지복점은 실험심리학자 하워드 모스코비츠가 개발한 용어로, 당과 소금, 지방이 완전한 비율로 구성되어 신경학적으로 쾌락적 보상을 가장 많이 느끼는, 즉 맛의 최적화된 지점을 가리킨다. 모스코비츠는 수학적 기법을 활용해 연구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설탕처럼 유혹적인 맛에는 한계점이나 티핑포인트가 있어서 그 지점을 지난 뒤에도 계속 같은 성분을 첨가하면 음식의 기호성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식품 산업은 가공 식품을 개발할 때 이 지복점, 즉 거부할 수 없는 맛과 촉감을 찾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2) 다양성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은 맛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종류까지 다양하다. 현대 소비 문화의 특징이 바로 '선택지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현대 문화는 선택이 많아질수록 더 자유로워지고 더 행복해진다는 가치관을 심어준다. 선택은 과식을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선택할 음식이 적을수록 덜 먹는다. 똑같은 자극에 계속해서 노출되면 감각이 둔해지는 '감각특정적포만감sensory-specificsatiety' 때문이다. 반대로 선택할 음식이 많으면 (심지어 색깔만 다르더라도) 더 많이 먹는다.
3) 편리성
시간에 쫓긴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이 먹게 된다. 근대화와 산업화는 시간 개념을 엄청나게 바꿔 놓았다. 바쁘고 시간에 쫓길수록 전통 음식을 만들고 즐길 기회가 줄어든다. 스스로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면, 시간을 절약해주는 상품이나 식품을 소비하게 된다. 뷔페와 패스트푸드, 간편식품은 시간이 없다는 신화에 응답하며 성장해왔다. 이미 미국 가정의 식료품 구매 패턴에는 시간을 아끼려는 욕망이 강력하게 반영되어 있다. 음식을 대량으로 사서 쌓아두고 먹는다. 덕분에 코스트코나 샘스클럽 같은 창고형 할인매장도 성장했고 보조 냉장고 구매도 늘어났다. 패스트푸드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92%가 신속하기 때문에, 52%가 너무 바빠 음식할 시간이 없어서 사먹는다고 답했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직접 요리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많이 먹고 식사 횟수도 늘어난다. 또한 비만율은 음식 조리 시간과 반비례했다. 즉, 직접 요리할수록 섭취 칼로리가 줄어든다. 이는 과식을 유발하는 초기호성 식품을 먹지 않고 한 번에 많은 음식을 만들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

# 도서 리뷰 및 번역(영미도서) 문의 : haileyn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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