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적의와 분노를 모호하게 표현하면서 나도 모르게 방어 기제를 일으킨다. 이런 수동적 공격이 생기는 이유는 분노를 드러내더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혹은 복수를 당할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수동적 공격에는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
1. 소극적으로 ‘~하지 않기’
분노와 욕구불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매우 흔한 방법이다. 꾸물거리며 늦는 것에서부터 약속이나 업무를 잊어버리는 것 등은 일의 경중에 상관없이 불안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분노와 적의를 표현하고 상대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잊어버리는 행동은 ‘기억할 만한 일이 아니다’라는 의도를 은연중에 전달하면서 분노를 암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주지 않는 것도 '~하지 않기'에 해당한다. 상대가 난처한 상황에 처하도록 만들고는 '말한 줄 알았다', '잊어 버렸다', '나는 얘기했는데 네가 기억 못한 것이다' 등의 핑계를 대며 빠져 나간다. 평소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있다가, 상대방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모른척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심장 발작을 일으킨 가족에게 적절한 구호 조치를 하지 않는다거나, 아픈 아이에게 제대로 약을 챙겨주지 않는 식이다. 누군가가 뚜렷하게 우울한 상태이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모른척 하는 것도 '수동적 공모'이자 '~하지 않기'에 해당한다.
2. 걱정하는 척하기
타인의 불행이 내심 통쾌하지만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하는 태도를 말한다. 라 로푸슈코는 '친구가 괴로운 처지가 된 것을 보아도 왠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했다. 인간의 이런 특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연애 상담을 하는 친구에게 은근히 헤어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투로 말하면서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보통 마음 속에 잠재된 적대적인 의도를 겉으로는 '동정', '공감', '측은함' 등으로 위장하며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한다. 긍정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통해 은연 중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사이 좋은 부부를 보고 질투가 나면, '바람 피우지 못하게 문자를 확인해라', '남편이 인기가 많아 보이는데 걱정이다'라는 식으로 걱정하는 척하면서 불안을 심어주려고 한다. 나쁜 일이 일어날까 걱정된다며 친절한 척 말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속으로는 상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3. 치환
상대방에게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활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치환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먼저, '누가 그러는데~' 처럼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전달하는 형식으로 특정 사람의 험담을 하거나 안 좋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고 다니는 것도 치환이다. 두 번째 유형은 일종의 화풀이로, 정말 화를 내고 싶은 상대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상처 입히거나 괴롭힘으로써 분노를 표출한다. 이 경우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 사람은 그 분노가 사실 나를 향한 것임을 알아챌 수 있다. 세 번째는 '일반적으로 ~는 ~해서 나쁘다'는 식으로 분노를 전달하는 것이다. 가령 아내가 못마땅한 남편이 회사 여직원 얘기를 하면서 '집안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외식만 한다'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험담을 할 수 있다. 모두 아내에게 들어맞는 내용이라면, 그의 의도를 명확하게 짚을 수 있다.
4. 이중 구속
'이래도 불만, 저래도 불만'인 경우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든다. 상대가 도망칠 길을 차단해 무력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며느리가 일을 하면, 일 같은 건 그만두고 가정에서 애들을 챙겼으면 좋겠다고 불평하다가 막상 일을 그만 두면 집에서 놀지 말고 아르바이트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표하는 식이다. 이들 눈에 차분한 여성은 수동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은 기가 센 사람이다. 일을 잘 못하면 무능하고 한심한데, 일을 척척 잘하면 일 중독자가 된다. '이중 구속'은 보통 분노와 욕구불만을 쌓아 놓고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5. 정당화
앞선 방법들을 사용해 우회적으로 분노와 적의를 표출한 후,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핑계를 장황하기 늘어놓는 것을 말한다. '악의는 없었다', '비난을 받아서 발끈했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정당화한다. 핑계를 늘어놓는 이유는 둘 중 하나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이거나 아니면 '복수당할 위험을 줄여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핑계를 대는 사람들은 자신이 화를 내거나 적의를 드러내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를 느낀다.
6. 투영
정당화와 연관된 개념으로, 내가 느끼는 분노를 상대에게 투영하는 것이다. 즉, '당신이 내게 화가 나서 나 또한 화가 난 것이다'라고 구도를 역전시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한다. 수동적 공격을 반복하는 사람은 자기 분노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과거의 사건 탓으로 돌리기도 쉽다.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고 하거나 심술궂은 행동을 하고 나서 '내가 이러저러한 환경에서 자라서 어쩔 수 없다'고 과거 탓을 하는 것도 투영이다. 또 적대감을 사회 전체에 투영해 세상 탓을 하면서 '내가 당한만큼 돌려주는 것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실은 자신의 분노와 적의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해 생긴 결과다.
7. 부인
분노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모든 방법들 안에는 '부인'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 즉, 자기 내면의 분노와 적의를 인정하지 못하고 부인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어 기제를 구사하면서 마치 그런 감정이 내면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포장하게 된다. 잘만 하면 공격적 언행 속에 숨겨진 의도를 피해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수법이 '저지른 뒤 취소하기'다. 저지른 뒤 취소하기란, 부정적인 행위와 긍정적인 행위를 동시에 또는 연달아 해서 분노 표현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웃으면서 적의가 담긴 말을 던지거나, 공격의 의도가 담긴 말을 하면서 뒤에 물음표를 붙여서 객관적인 질문처럼 보이게 말하는 것 모두 부인에 해당한다. 책을 출간한 사람에게 '책을 출판하면서 돈을 내야 하는 일은 없었나요?'나 '출판사에서 광고를 별로 안 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런거죠?' 라는 식의 질문은 '사비로 출판한 것 아니냐' 혹은 '출판사에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식의 의심을 담고 있지만, 질문 형태로 말을 바꾸면 죄책감 없이 말하면서 시기나 적의가 없는 척할 수 있다. 상대가 싫어할 법한 공격적인 질문을 한 후에 '별 다른 뜻은 없었다. 불쾌했다면 미안하다'는 식의 사과도 마찬가지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지만 들으면 누군지 알법한 이야기를 하면서 창피를 주는 것도 적의를 교묘하게 드러내는 방법이다. 이런 수법은 피해자에게 두 번 상처를 입힌다. 듣는 즉시 자신이 공격 당했다고 느끼면서도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혹시 내가 예민한 것 아닐까'하면서 당황하고 불안과 수치심까지 느낀다.
분노를 간접적으로 표출하는 이유
1) 흑백논리
흑백의 이분법적 논리를 가진 사람은 무엇이든 '0아니면 100'으로 이해한다. 분노를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것은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과 같다고 여기기 때문에 분노를 직접 드러내는 일에 항상 큰 위협감을 느낀다.
2)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거절당한 경험
부모가 아이의 분노 표출을 인정하지 않고 강한 비난과 거절의 신호를 보여주면 아이는 '내가 분노해도 어차피 이해받지 못한다. 잘못하면 버려질 수도 있다'라고 생각해 지속적으로 불안감에 시달린다. 점차 분노를 억압하는 습관이 몸에 배고 나중에는 분노를 직접 드러내기 두려워하게 된다. 그리고 부모가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자기 감정만 생각하는 경우, 아이는 자기 역시 부모를 거절하거나 아니면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다. 어린 아이는 부모를 거절하고서는 생존할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후자인 '형식적인 관계'를 택한다. 그러면 분노와 적대감을 마음 속 깊이 숨긴채, 겉으로 착한 아이를 연기하면서 칭찬받기 위한 행동들을 하게 된다.
3) 본노에 대한 통제가 강한 사회
어릴 때부터 '좋은 사람은 화내지 않는다'는 가치관을 주입받는 사회에서 자라면 분노를 드러내는 것을 꺼리게 된다. 일본 사회가 대표적인 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도 물론 중요하지만, 분노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은 개인의 성격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인간은 누구나 욕구 불만을 느끼고 욕망을 좌절시킨 인물에 대해 분노와 적개심을 품기 마련이다. 분노는 업악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분노가 없는 척 할수록 모호한 형태로 이를 표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쓰게 된다. 수동적 공격을 교묘하게 받는 피해자들 또한 욕구 불만이 생기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수동적 공격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출처:
왜 화를 멈출 수 없을까 (가타다다마미 / 생각정거장)
# 도서 리뷰 및 번역(영미도서) 문의 : haileyn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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